636년(선덕여왕 5년) 신라의 고승인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비로소 고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드물었던 깊은 산중의 오랜 침묵을 깨뜨린건 천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서였습니다.
 1960년대 시작된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이 땅의 지하에는 막대한 양의 석탄이 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석탄을 캐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전성기인 1980년 무렵에는 무려 3만여명이나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마을의 번영은 불과 30년만에 폐광과 함께 스러져 갔습니다. 
깊은 지하에서 어렵사리 석탄을 캐어내는 것보다는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는게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십여년간 인간의 탐욕이 휩쓸고 지나간 함백산 자락엔 새 생명이 자라났고 야생화가 되어 산 아래 사람들을 보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한은 가장 높은 곳(만항재 1330m)에서 온갖 시련을 감내하고 피어난 들꽃을 닮았습니다. 
오랜 역사와 백두대간의 수려한 자연유산 그리고 석탄산업문화유산과 
탄광마을의 독특한 생활문화가 공존하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마을이 바로 고한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마을 여행지

Village Hotel 18st